짚으로 엮고 풀빛 물들이기 <공예전문지 월간 craft, 2005.>

2005.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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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짚풀생활사박물관(관장 인병선) 지하 체험장에서는 주말마다 짚으로 엮는 신선한 즐거움이 샘솟는다! 짚풀공예품 만들기 교실이 열리기 때문이다.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옛날 전래동화에 나오는 나무꾼들은 하나같이 ‘지게'를 지고 ‘짚신'을 신었다. 또 어머니를 여읜 오누이는 하늘에서 내려준 새 동아줄과 새 ‘삼태기' 덕분에 못된 호랑이를 따돌리고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

전래동화를 듣고 자란 어린이들이라면 짚신이나 지게, 삼태기 등등의 이름이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 보고, 또 만들어 보는 것은 여전히 색다른 경험의 영역에 속하리라. 시골에 사는 아이들이면 몰라도 컴퓨터와 전자오락에 익숙한 도회의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특히 그러한 경험이 주는 환희가 더욱 남다르겠다.

짚과 풀로 가꾼 전문박물관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짚풀생활사박물관(관장 인병선) 지하 체험장에서는 주말마다 짚으로 엮는 신선한 즐거움이 샘솟는다! 짚풀공예품 만들기 교실이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청담동에서 대학로로 이전한 후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편리해졌으며, 공간을 보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구성한 덕이다. 물론 (사)짚풀문화연구회를 통한 교육활동은 1993년 박물관 개관이래, 짚과 풀로 만든 민속자료를 수집, 연구, 전시하며 명실공히 세계 유일의 짚·풀 전문박물관으로 자리잡으면서부터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짚신·망태기·멍석·달걀꾸러미·새끼줄 등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만든 생활용품 및 공예품에서 죄수의 머리에 씌우던 짚주저리까지, 짚·풀 관련 민속자료 3,500여 점을 비롯하여 제기(祭器) 1,000여 점, 한옥문 200여 세트, 세계 각국의 팽이 500여 점, 슬라이드 25,000여 점 등을 소장하고 있어 짚풀문화 교육장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볏짚 만두인형 만들기

방학중에는 가족이나 선생님과 함께 이 정겨운 배움터를 찾는 아이들의 들뜬 발걸음이 부쩍 늘어난다. 까닭 없이 설레는 토요일 오후, 박물관을 찾았을 때, 방학이 막바지에 접어든 탓인지 아담한 체험공간이 입추의 여지없이 북적 북적댔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 아이들과 동행한 어른들은 한 무더기씩의 볏짚을 앞에 놓고 저마다 묶고 자르고 비비고 했다.  한쪽은 짚풀을 이용한 전통 공예품들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데, 그저 박물관 관람을 하러 온 이들도 신기한 듯 이 풀냄새 시골냄새 나는 체험현장을 호기심 있게 지켜보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아이가 졸랐든 엄마가 향수를 느꼈든 그 틈에 끼어 지푸라기 한 움큼 움켜쥐고는 마냥 좋아하는 것이었다.

"자, 잠깐 조용히 하고 여길 보세요!!" 이날 따라 유난히 단체로 온 팀이 많았는지 아이들의 가운데 서서 작업을 지도하고 있는 강사 정우영씨가 평소보다 목소리의 톤을 한껏 높인 듯 했다. 그런데도 한창 신이 난 아이들의 왁자함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처음에는 무얼 만드는 지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볏짚을 가지고 조물락 조물락 거리는 손놀림만을 느낄 뿐이었다. 가끔씩 짚의 거친 끝부분에 손가락이 찔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밴드만 하나 붙여주면 그깟 상처쯤 뭐 대수냐는 식으로 다시 만들기에 열중하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짚더미들이 고사리 손안에서 차차 모양을 갖추는 게 보였다. 양파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름하야 ‘만두인형'이란다. 예전에 이곳 체험교실에 참가했던 한 어린이가 만두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준 이름이라고. 아랫부분은 둥그렇게 볼륨을 살려 위로 한번 동여매고 앙증맞은 눈 2개를 붙인다. 위로 뻗은 부분은 사방으로 퍼지게 하고 천장에 매달 수 있는 끈까지 달아 주면 완성이다. 조금쯤은 엄마나 선생님의 손길이 닿은 것들이지만 저마다 자기 인형을 높이 쳐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뽐내는 양이 그야말로 아이들다웠다.

짚풀문화를 알리는 일

수시로 이루어지는 체험교실 및 정기강좌와 같은 교육 프로그램은 짚풀문화연구회의 가장 큰 ‘할 일'이다. 체험교실은 주말 외에 평일에도 마련되어 있다. 단 평일에 참가하려면 10명 이상의 단체로 신청을 해야한다. 정기강좌는 1주일에 한번, 수요일반과 토요일반이 있는데, 정기강좌 등록은 곧 짚풀문화연구회의 회원 가입을 의미한다. 초급, 중급, 고급, 각 과정 3개월씩 모두 9개월의 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수료증을 발급해주고 강사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 이렇게 해서 한 해에 대강 15명 남짓한 인원이 강사로 배출된다. 이들은 각 지역으로 파견되어 지회의 운영 및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보통 정기강좌는 어른들, 특히 주부들이 수강생의 대부분인데, 이날은 처음으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등록을 해 모두의 놀라움을 샀다. 엄마들 사이에서 상기된 얼굴로 짚을 꼬는 아이의 모습에 풋풋한 긴장이 배어 있는 듯 보였다.

짚풀문화연구회의 활동은 곧 짚풀문화의 저변확대 및 대중화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짚풀 공예품을 시골 농가의 풍경가운데 등장하는 한 소품쯤으로나 여기던 젊은 도시인들도 이제는 그 참된 의미와 쓰임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일만은 아닐 터다.

작은 감동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짚풀문화연구회 서울본부의 회장이기도 한 인병선 관장은 이 박물관을 개관하면서 많은 꿈을 버리고, 그만큼의 많은 꿈을 새로 가꾸었을 것이었다. 곳곳에 스친 그의 애정의 흔적들이 이제는 이 박물관에서 가장 돋보이는 공예적인 작품이 아닐까 한다. 아울러 그와 함께 박물관을 꾸려 가는 모든 식구들은 이 곳을 찾는 이들을 남다른 애정으로 끌어안을 줄 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에게 특별한 정성을 쏟는다. 즉 저마다 자기만의 작은 감동과 기쁨을 품어 가게 되는 것이다.

하루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손으로 거친 듯 부드러운 짚을 꼬아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한 들 어떠하리. 짚으로 희망을 엮고 풀빛 물들이는 소중한 추억을 선사 받게 될 테니...


이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