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여치집 맹그라주먼 쇠죽 쑬 게-<오마이뉴스,2006-06-21>

2006.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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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여치집 맹그라주먼 쇠죽 쑬 게"
[동무들의 악다구니 19] 보리타작 싫어도 보릿짚이 좋았네
  김규환/김용철(kgh17) 기자   
▲ 여치집을 만들고 있는 형제
ⓒ 시골아이-맛객 김용철
올해도 몸서리나도록 싫은 보리타작 하느라 기운이 쏙 빠졌다. 봄에만 큰 일이 보리밭 매기, 고추심고 고구마 부치기에 일년 먹을 채소 빠트리지 않고 심고 못자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1모작 모내기 하고 보리 베서 눌러놓고 마지막으로 2모작 모내기를 하면 끝날 것 같던 일이 또 하나 기다리고 있다. 바로 보리타작이다.

중부지방은 벼만 심어서 거두면 되는 1모작이라 농한기도 길어 농사일이 여유가 있었지만 우리네(전남 화순)는 벼를 베자마자 곧바로 보리 파종에 들어간다. 겨울철 서릿발에 뿌리가 들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보리밭을 밟아줌은 물론 이른 봄엔 잡초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도 모자란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모내기를 하며 막걸리를 마셨다는 보도가 한참이나 지난 때 보리를 갈지 않은 논에 1모작 모내기를 일부 했을 뿐 당시 8할 이상은 보리밭, 밀밭, 삼밭으로 남아 겁도 안 나게 일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는 가을걷이와 비교하여 일의 강도와 양에 있어서 3배가 넘는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보리가 보랏빛 무지개 색을 띠다가 일시에 황금물결을 이루매 원수건지가 따로 없다. 모판에 있는 모는 어서 너른 들판으로 옮겨 달라 아우성이다.

농사 한번 수월하게 지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예닐곱씩 낳은 자식들 중에 큰 애들은 커서 학교로 공장으로 떠나고 말았으니 초등학생 코흘리개 아이들과 보리를 베는 건 까끄라기는 둘째 치고 깡마른 뙤약볕에 토시를 하고 베는 일이야말로 먼지에 비지땀까지 쏟으니 정말이지 못해먹을 일이다.

게다가 곧바로 타작을 할 수 없다. 2모작 모내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대충 묶어서 공터에 눌러놓고 하지가 지난 다음에라야 발동기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 손놓고 있어야 한다. 농토가 좁은 산촌, 그것도 담양, 곡성, 화순 산골짜기 가난한 마을은 애 어른 가리지 않고 일을 도와야 했다.

단순히 젖먹이 동생을 돌보는 일로 그치지 않고 어른 몫 절반 이상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학교 갈라치면 교실에서도 여자애들은 머리끄덩이 잡히기 일쑤였고 남자애들은 귀를 잡혀 끌려가 작대기로 맞는 아이들이 다반사였다.

내게 있어서 학교는 피신처였다. 시키지 않아도 내 일처럼 조분하고 착하게만 살던 나도 결국엔 그 많은 일 앞에선 꾀병을 앓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학교로 도망치는 일이 잦았지만 육남이와 영희, 병문이만큼은 아니어도 웬만한 아주머니 못지않게 일을 거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키가 작고 평소 빈혈기가 있었던 터다. 좋아서 한 일 조금이나마 피해보고자 아파서 일을 못하니 학교에 가야 한다고 둘러대곤 했지만 큰일에선 빠지는 법이 없었다. 만약 요즘 세상에 그토록 일을 시킨다면 아동학대나 착취쯤으로 봐도 무방하리라.

하지가 한참이나 지난 어느 일요일엔 온몸에 보리 까끄라기를 뒤집어쓰며 깜둥이가 되었다. 지금껏 살면서 그토록 많은 먼지에 둘러싸인 적은 없을 만치 검불과 흙먼지로 옷과 머리카락, 목덜미뿐 아니라 사타구니에 얼굴까지 새카맣다보니 누렇던 이만 하얄 뿐이었다.

뛰듯 형과 함께 하염없이 타맥기가 뱉어내는 보릿짚을 갈퀴로 긁어 최대한 멀리 차곡차곡 쌓다가 미끄러져 흘러내리는 걸 눌러주다 보니 헉헉대며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래도 보리가 잘 영글어 쏟아져 나오니 육성회비, 기성회비에 잡부금 걱정을 덜 수도 있고 복숭아까지 사먹을 수 있으니 어딘가.

▲ 보리베고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2모작 모내기가 끝나는 하지 무렵에나 타작을 하면 다행이었다.
ⓒ 시골아이
여기에 어린 우리들에게 빠트릴 수 없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여치집이다. 밀짚은 더 바짝 말라 있어 손으로 만지면 부스러져 별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말라도 훨씬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보릿짚, 보릿대는 질경이가 꽃대를 쑥 내미는 시기와 맞물려 저는 것 자체부터 행복이었다.

어느덧 들판이 새 옷으로 갈아입을 무렵 초여름 비를 한번 맞고는 보릿대를 눌러놓은 자리가 쑥 가라앉을 때 학교에 갔다 오던 나는 올 핸 꼭 여치집을 절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혼자서도 그깟 여치집 하나 만들지 못하면 스스로 병신이라 여기기로 했다.

보릿짚이 단단히 엉겨 있었지만 자칫 보릿대를 잘못 건드렸다간 한꺼번에 무너져 온통 까끄라기를 뒤집어쓰는 날벼락 맞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지라 조심조심 다가갔다. 가방을 멀찌감치 내려놓고 한 더미를 쭉 빼서는 게 중 쓸만한 길쭉한 걸 골랐다. 가지런히 한 개 두 개 추려나가다 보니 어느새 한 움큼이 되었다.

손치, 기계치는 한통속이라 했던가. 만들기에 능숙하지 않던 나는 밑바닥을 만드는 데도 여전히 쉽지 않았다. 뭐가 잘못 되었던가. 온갖 기억을 되살려 형이 하던 대로 매듭이 있는 보릿짚에 다른 걸 끼워서 접어나가는 데도 몇 번을 맴돌다가 와르르 풀리고 만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이럴 땐 포기하는 게 낫겠다. 스스로 하지 않고 해마다 형에게 부탁해서 내 여치집을 가졌던 데 원인을 돌렸다. '왜 딴 동무들은 잘만 하던데 나는 되지 않은 걸까?' 생각하며 오늘도 골치 아프게 머리 쓰는 일을 하지 않기로 하고 보릿대를 한 아름 안고 집으로 왔다.

성, 뭤헌가?"
"숙제 헌다."
"많이 남았어?"
"아니, 째까만 허면 돼야."
"성, 거시기 뭔가…. 여치집 좀 맹그라 주라."
"너, 아직까장 고곳도 못 맹그냐?"
"아까침에 찬찬히 해봐도 안 되든디…."
"성아는 잘 허잖녀. 내가 쇠죽 쑬 텡께 좀 해봐봐."
"아따 새끼 그것 하나 못허냐?"
"안 되는디 어쩔 것이여?"
"알았응께 솥단지에다 꾸정물이나 붓고 있어라."
"알았어. 근디 절대 내가 말래까장 올 때까지 절면 안 된다…."
"알았어야. 걱정 붙들어 매."


아쉬운 소리 했으니 몸이 고달픈 건 당연지사. 까만 고무 양동이에 시큼한 냄새가 나는 구정물통에 든 물을 휘휘 저어 쇠죽솥에 세 번을 부어 앉혔다.

이왕 손댄 김에 썰어 둔 풀을 넣고 보리 겨를 한 바가지 넣고 불을 지펴서 몇 개 남지 않은 장작을 매웠다. 평소엔 지켜보며 불을 땠지만 오늘은 다음부터 몸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면 이참에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잠시 뒤에 가보니 형은 벌써 여치집 밑동을 지나 대여섯 층이나 쌓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한쪽은 두 개를 나머지 세 곳엔 각각 하나를 끼워 접어 차츰 넓혀가는 중이다.

"뭤이여? 내가 올 때까장 지달리라고 했잖녀?"
"지금부터 잘 봐봐. 금방 배운당께. 쉬워야."
"몰라. 새시로(새로) 혀."
"얌마 아까운디 왜 푼다냐? 낼 한나 더 맹그라 주면 될 꺼 아니냐."
"지미."


▲ 종로구 혜화동 <짚풀생활사박물관>에 가면 추억을 떠올리는 짚 공예품이 즐비하다
ⓒ 시골아이
바쁜 손놀림이다. 보릿대 매듭까지 얇은 쪽을 밀어 넣고는 접고 또 접는다. 아직도 형은 넓이를 계속해서 0.1cm 쯤 넓혀가고 있었다. 차츰 넓어지니 참새를 두어 마리 넣어도 될 만큼 꽤나 커보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보릿대를 하나 입에 물고 있노라니 달달하다.

기다란 형 한 뼘 가량 넓어지자 층마다 늘이기만 했던 넓이의 두 배 가량을 줄여나간다. 높이는 15cm쯤이었다. 어찌나 촘촘하던지 파리를 넣어도 밖으로 나오지 못할 지경이다.

"가서 물 좀 한 그럭 떠올래?"
"왜?"
"너무 말라각고 안 되겄어야. 후딱 갔다 와. 오는 길에 쇠죽 솥 불도 좀 보고…."
"참, 가지가지 시키네."
"딴 말 말고…."
"알았어."


물을 떠오자 입에 한 모금 가득 마시더니 "푸-" 하고 뿌리고 잠시 지나자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줄여나가도 한 층 두 층 거듭함에 따라 대폭 줄여지고 있었다. 현저히 줄어들며 다보탑처럼 제법 모양새가 갖춰진다.

"성, 다 됐는가? 글먼 내가 논두렁에 가서 여치 잡아 오게."
"째까만 더 지달려봐. 고새 다 될 것이여."
"대충 묶어서 줘봐."
"안 됌마. 여치집은 마무리를 잘 혀야 돼."


이젠 마무리다. 머리를 따가듯 엮고는 마지막엔 단단히 묶어주니 근사한 그야말로 에펠탑보다 아름답고 노란 탑, 여치집이 완성 되었다. 형은 균형이 잘 잡힌 여치집을 들어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려고 뜸을 들이고 있었다.

"아따, 줘봐봐."
"얌마 글다 구겨지면 어쩔라고?"
"일로 줘 언넝."


반강제로 빼앗았다. 들고 밖으로 나갔다. 세 들어 산 우리집은 사립문만 나서면 동네 한길이다. 회관 앞을 지나 골목 안으로 가다가 하마터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새 여치집을 망가뜨릴 뻔했다. 넘어지면서도 반사적으로 여치집을 보호해 무릎만 까지고 무사했다. 마침 병문이와 병용이가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다. 등 뒤에 숨겨놓고 약을 올릴 참이었다.

"너거들 여치집 있냐?"
"아니."
"난 우리 시째 성이 맹그라줬는디…."
"어디 봐봐?"
"안 돼."
"한번만 보자니께."
"버찌 한 줌 따주먼 보여주께."
"알았어야. 따줄텡께 언넝 보여줘."
"근디 살살 만져야 된다. 알았지?"


걸작 앞에 납작코가 되어버린 두 아이들 앞에서 나는 한참이나 뻐기면서 도로 빼앗아 놀려주고 있었다.

"글면 니기들은 구슬치기 해라. 난 여치 잡으로 갈란다. 같이 갈텨?"
"한 번 더 만치게 해줄 거야?"
"잉."


▲ 메뚜기, 풀무치, 여치, 방아깨비를 잡아 넣고 싶지만 아직은 철이 조금 이르다.
ⓒ 시골아이-맛객 김용철
병문이만 데리고 논두렁으로 갔다. 벌써 어둠이 짙게 깔려 이슬을 잔뜩 머금고는 풀도 잠이 들고 있었다.

"스륵 스륵"

"쉿! 살맹이 가서 덮쳐부러."
"쓰르르르"


연신 초등학교 1학년 둘을 유혹하고 있다. 풀숲이 흔들리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 손을 덮었다.

"야, 잡았다. 잡았어."
"어디?"
"엉? 없어야. 아따매 아까운 거."
"규환아 인자 안 보인께 낼 다시 오자."
"그래야 쓰겄다."


아쉬웠지만 쉬 포기하고 집으로 온 건 저녁밥 먹을 시간을 넘기면 국물도 없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는 옷을 걸어두던 못에 조심히 걸어두고는 다음날 여치, 메뚜기, 풀무치를 몇 마리나 잡아서 넣을까, 풀도 함께 넣어줘야지 하는 꿈을 꾸며 스르르 잠에 빠졌다.

이듬해도 그 다음해에도 나는 형에게 의지한 나머지 혼자서 여치집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토록 예쁘고 튼튼한 여치집은 여태 보지 못했다. 지금도 보릿짚, 보릿대만 보면 여치집을 만들고 싶다.

여치집 만드는 방법
나들이 가거든 여치집 한번 만들어볼까요?

ⓒ짚풀생활사박물관

순서대로 따라해보세요 / 김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