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시인 유품전 낸 아내 인병선씨-연합뉴스 07.10.04.

2007.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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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의 아내 인병선씨(자료사진)

"남편의 시는 늘 나를 반성케하는 지표"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신동엽 시인은 민족시인으로만 해석되고 불려서는 안됩니다. 그의 시가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의 서정성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껍데기는 가라'라는 외침은 여전히 저를 반성케 하는 지표입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껍데기는 가라'로 잘 알려진 신동엽 시인(1930-1969)의 첫 유품전을 연 아내 인병선(72)씨는 38년 전 떠난 시인의 시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인씨는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의 첫 전집은 1975년 창비에서 출판되자마자 '긴급조치 9호'에 의해 판금 조치됐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읽히며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됐다"며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신동엽 전집'은 바이블과 같았다"고 회고했다.

인씨는 "지금처럼 민족주의가 많이 퇴보한 시대에도 여전히 그의 시가 읽히는 이유는 동양철학과 함께 우리 민족의 서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씨는 시 '껍데기는 가라'를 평생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지표로 삼아왔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껍데기는 가라'의 초고 등 수많은 육필원고를 비롯해 시인의 학창시절 성적표, 교사자격증, 수업시간표, 메모장, 담배 파이프, 전 생애에 걸친 사진 등 시인의 품성과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유품 200여 점 가량이 공개됐다.

모두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훨씬 전부터 늘 신변 가까이에 두고 정성을 다해 보관해온 유품들이다.

인씨는 "갈겨쓴 듯한 메모 한 장은 때론 그 시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고친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초고들은 시인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됐는가를 알려준다"며 "모두 시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에 내게는 함부로 버릴 권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인씨는 생전 시인의 모습에 대해 "항상 힘들게 살았고 몸이 허약해 늘 약을 복용해야했다"면서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다녔지만 자식들에게는 무척이나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신동엽 시인은 39살에 간암이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신동엽 시인 유품전 연 아내 인병선씨

인씨는 그러나 "그는 항상 사회, 민족 문제에 골몰해 있어 그 사람을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가질 수 없었다"며 "너무 꼼꼼하고 단정했다는 점이 남자로서의 단점이었다"고 기억했다.

재작년 평양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껍데기는 가라'를 낭송하기도 했던 인씨는 현재 평양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일단 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인씨는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는 것은 대단한 상징성이 있다"며 "이렇게라도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은 노무현 정권의 업적이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내달 4일까지 전시되는 유품들은 현재 부여군에 건립 중인 신동엽문학관이 준공되면 모두 그 곳에 보관될 예정이다. ☎02-743-8787~89.

js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