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으로 흐른 남과 북의 눈물 <2005. 6. 19>
2005.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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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관중들은 5분여 동안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단 1회 공연 후 남쪽으로 돌아가는 '금강' 가극단 배우들에게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오후 7시 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에서, 북측 관객들은 가극으로 공연된 서사시 '금강'이 전하고자하는 시어(詩語)에 함축된 메시지를 특별한 설명이 없이도 이해함으로써, 남과 북은 민족적 감성의 공감대가 근본적으로 같은 한 민족임을 보여줬다.
춘향전 출연진들은 공연이 끝난 후 꽃다발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가 남측 배우들에게 건네줬으며 남측 배우들은 북쪽의 관례대로 받은 꽃을 관객에게 던져주며 진한 동포애를 나눴다. 공연 직후 인민문화궁전에서 있었던 남측의 답례 만찬장에서는 북측 문화성 고위 공직자 한 사람이 '금강' 공연팀의 자리로 찾아와 스태프 및 출연 배우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음악 담당으로 알려진 그는 좋은 공연을 보여줬음에 감사를 표하며, "우리(북)는 이런 형식의 가극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남측의 '금강'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가극 '금강'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연출을 맡았던 김석만 교수는 북측 관객들의 반응을 요약해달라는 기자의 말에, '주제와 소재의 충격' 이란 한 마디로 압축했다. 김 교수는 북측 공연 관계자들이 "동학이 부패권력에 저항하는 도전적 주제임에도 남쪽에서 동학을 주제로 쓴 이런 시가 있고, 그 시를 바탕으로 만든 가극도 있었냐고 했다"며 "그런 사실을 '충격'으로 표현한 것은 자기표현을 잘 안 하는 북측 사람들로서는 보기 드문 솔직한 평 같았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이어 "체제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가장 좋은 도구는 예술 작품이란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며 "이러한 체제 공감각적인 무대 공연물을 남과 북이 활발히 주고받음으로써 민족 통일이란 어려운 난제를 풀어갈 정신적 공감대 형성에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갔으나 공연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무대 현장 접근 여건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해는 한다고 말했다. 방북 첫 날엔 스태프에게만 무대를 공개해서 배우들에겐 매우 중요한 실제 무대의 공간 감각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또 이튿날인 15일에도 낮에 4시간과 밤에 3시간 정도만 무대가 공개되는 등, 실제 무대에서의 동선 재정리 등이 충분치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첫 번째 북한 공연이란 긴장과 연이은 연습 강행군에 남쪽에서부터 피로가 누적된 '진아'역의 길성원과 '명학' 역의 양준모가 탈진해 응급조치로 링거를 맞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대의 물리적 조건은 전체적으로 비교적 우수했으며 조명 음향 등도 수준급이었다는 스태프 및 출연 배우들의 평이다.
무대극이 정치적 목적으로 다양하게 이용된 것은 동서고금이 같다. 그만큼 무대극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메시지의 현장 전달력이 강하다. 가극 '금강'의 평양 공연으로 남북은 서로 조심스러워하던 무대극 공연 교류의 물꼬를 텄다. 더구나 서사시 '금강'이 군사 정권 시절 판금 조치되었던 기록이 보여주듯이, 다분히 체제 저항적이고 도전적인 주제의 '금강'을 과감히 들고 갔다. '금강'에 대해 과거 어두운 시절부터 이어지던 '북에서 더 좋아할 주제'라는 편견은 이번에도 평양 공연 결정에 은근히 발목을 잡은 '목 안의 가시'였다. 그러나 남쪽은 순수한 예술 작품으로서의 '금강'을 들고 접근했고, 북측도 작품 주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방적 해석을 하지 않았다. 그저 미학적 공감대가 같은 하나 된 민족으로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신동엽 시인의 부인 인병선씨는 "남북을 떠나 우리 민족에게 원초적으로 내재된 공통된 감성을 자연스럽게 확인한 자리 아니었을까"하는 말로 회고했다. 앞으로 제 2, 제 3의 금강이 북으로 흐르고 대동강도 자연스러이 남으로 흐른다면 분단 조국의 통일은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평양 공연에서의 모습 그대로 6월 28일, 29일 양일간 경기도 안산문화예술회관에서 '남측 관객' 앞에 흐를 가극 '금강'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