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이 못 오면 우리가 가마! <오마이뉴스, 2005.8.7>
2005.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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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맨살에 한여름 불볕이 뜨거운 바늘을 꽂아대는 듯한 염천(炎天)을 아랑곳하지 않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부 회원 16명이 뭍으로 문학기행을 나섰다.
우리가 금강으로 가마! 사십여일 전에 신동엽의 장편 서사시 '금강'이 가극으로 평양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나 정작 남측 관객들을 위해서는 안산에서의 2회 공연으로 끝나야했던 것에 전국에서 지방 연장 공연을 바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던 바 있다. 갖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잠을 쫒다 지쳐 쓰러져가며 혼신을 다해 연습한 무대를 남북 합해서 4회 공연으로 끝낸 공연팀의 아쉬움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제주에서도 역시 가극 '금강'의 제주 공연을 강력히 희망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로 뭍에서도 안산 공연만을 겨우 마친 금강이 제주까지 건너가기엔 현실의 강은 너무 깊었다.
"금강이 못 온다면 우리가 금강으로 가마!"의 뜨거운 열정은 그들의 얼굴에서 더위를 느낄 수 없게 했다. 덥다 못해 숨마저 헉헉거리는 한여름 무더위에 시원한 산 강 바다를 제쳐두고 고행이라고 해도 좋을 문학기행길을 적잖이 돈을 들여 떠난 이유를 묻자, 김순남 제주지회 부회장은 "이 때가 아니면 힘들다"는 간단한 말로 대신했다. 곧 개학을 앞둔 교직에 있는 회원이 많은 등 개인 일정상 다른 날을 고르기가 힘들었다고. 일정상 첫 날과 둘째 날의 부여와 공주 코스를 동행 취재한 기자는 그들의 열정 앞에서 옷이 땀에 흠뻑 절면서도 감히 덥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했다. 길잡이를 맡은 부여문화원 김인권 사무국장은 일행의 산길 보행 중 탈진을 염려해 신동엽 묘소 방문을 우금치 방문과 순서를 바꿔 늦은 시간에 진행할 만큼 더위는 숨을 턱에 차게 했다.
동학농민군의 최대격전지 공주 우금치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신동엽 시인을 35년 전에 먼저 보낸 부인 인병선씨가 민족시의 기념비 "껍데기는 가라"를 낭송했다. 인병선씨도 제주에서 올라온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며 서울에서 내려온 터.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낭송을 들으며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금강은 더위에 지쳤는지 통일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더 처연해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가극 '금강'의 주제는 동학농민전쟁이다. 여기에 신동엽은 각각 남쪽의 남자 '하늬'와 북쪽의 여자 '진아'를 절묘하게 얹어 마치 앞날을 내다보듯 통일의 신념을 강한 암시로 그렸다. 동학농민군이 '척양척왜'를 부르짖었듯, 오늘날 통일운동에 장애가 되는 상당 부분이 역시 '외세'인 것은 동학바람이 불던 때의 정세와 비슷하고, 살벌하던 군사정권 시절에 통일 논의와 통일 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도 학생 종교지도자 등 기층 민중이었던 것도 동학 때와 비슷하다. 신동엽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공안 기관의 감시 대상이었던 시절이 옛 이야기가 된 것을 보면 통일은 그것만큼은 가까워진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통일과 반통일은 이 시대에 엄연히 공존하며 마찰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땅의 수많은 하늬와 진아가 얼싸안고 만날 수 있는 날, 금강은 그 지친 물줄기를 힘차게 뿜어내려 서해에서 대동강물을 얼싸안을 것이다.
통일을 기다리다 지친 수많은 실향민들도 애처롭지만, 꿈결에 스치듯 얼굴이나마 본 이산가족들이 그 후가 더 고통스러워 세월에 지친다는 소식은 더 애달프게 한다. 지치고 쓰러져도 가야 할 길이 민족 통일의 길이다. 이번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지부 회원들의 열정처럼 기층 민중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통일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는 한 통일을 우리 시대에 볼 것임은 필요하고도 충분한 명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