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 세 어른에게 인연을 배우다

2005.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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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손들 쉬어 가라고 만든 동백숲 쉼터
ⓒ2005 김대호
설익은 가을볕에 아직은 매운 해거름을 타고 인병선 선생님이 다녀가셨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낮은 톤이었으며 말 한마디 몸짓 하나하나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세상 물정 어두운 사람이라 이 분이 신동엽 시인이 사랑했던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참을 인연에 대해 말씀하셨다. '인연은 억지로 맺고 끊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듯 해야 한다. 그러면 인연 때문에 사람이 다치지 않고 오히려 인연 때문에 사람이 즐거워진다'는 말씀이셨다.

시인이 사랑한 이는 어떤 분일까?

▲ 교무님은 본인은 오막살이에 기거하고 손님들은 황토흙집으로 모신다.
ⓒ2005 김대호
내 초가에 이부자리를 봐드리고 아침에 문안드리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침 방문 앞에는 내 고무신 한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지리산 산지기가 손수 적송을 켜서 만든 내 찻상 위에는 연분홍 색종이에 '다시 만나는 인연되기 바랍니다'라는 메모만 남아 있었다. 아쉬움과 죄송스런 마음뿐이었다.

빈방에 앉아 '인연'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인연이 아니라고 걷어 치워 버린, 혹은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절교해 버린 사람들을 생각했다. 나의 인연은 왜 긴 숨을 내쉬지 못했을까. 아마도 부족한 폐활량으로 인해 들숨의 양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사랑했던 분은 어떤 분일까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시대를 온몸으로 짊어지고자 했던 시인의 부인인지라 무척이나 옹골지고 무뚝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나지막한 음성으로 다사롭게 말씀하시는 것이 시골집의 내 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대. '사랑이 사치'라고 생각하던 시절 내게 이상형의 여자는 레닌의 아내인 '크루프 스카야'나 로자 룩셈브르크 같은 혁명가였다. 때로는 머리와 심장 모두 차가웠다던 프랑스의 장폴 마라도 내게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초가을'처럼 시인에게 시대나 사랑하는 여인은 매한가지 온몸으로 부둥켜 안아야 할 그 무엇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감미로운 사랑의 언어나 뜨거운 열정으로 사랑하는 이의 머리맡에서 심금을 울리는 시를 암송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사랑하는 법을 자애롭게 가르쳐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초가을'이라는 시처럼 말이다.

▲ 교무님이 마음을 다듬는 선방
ⓒ2005 김대호
초가을
- 신동엽

그녀는 안다
이 서러운
가을
무엇하러
또 오는 것인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모진 궤상(机上) 앞
초가을 금풍(金風)이
살며시
선보일 때,

그녀의 등허리선
풀 맥인
광목 날
앉아 있었다.

아, 어느새
이 가을은
그녀의 마음 안
들여다보았는가.

덜 여문 사람은
익어가는 때,
익은 사람은
서러워하는 때.

그녀는 안다.
이 빛나는
가을
무엇하러
반도의 지붕 밑, 또
오는 것인가...

<사상계 1965년 10월호>


잡초를 매지 않는 훈장님

오랜만에 마실을 나갔다. 마침 서당에 훈장님이 난을 치고 계셨다. 훈장님은 늘 '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치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오늘은 또 어떤 마음의 '줄기'를 다듬고 계시는지 손놀림에 거침이 없다. 부럽다.

▲ 때늦은 석산 꽃망울이 곱다.
ⓒ2005 김대호
내 작업실 현판을 '복사꽃피인집'에서 무산초당(無産草堂)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의논을 드렸다. 최근에 내가 겪은 몇 가지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현판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마음의 자세를 담는 그릇이자 남에게 약속하는 것인데 충분히 생각하라'는 말씀을 주신다. 여전히 내 마음의 이기심은 어쩔 수가 없다.

훈장님은 자신이 농사짓는 텃밭에 잡초를 매지 않는다. '본시 주인이 풀인데 사람이 비키라고 하면 순순히 비키겠는가? 손님이 주인한테 같이 살자고 부탁해야지.' 이것이 이유다. 소출은 적지만 드시고 손님대접 하기에는 충분한 양이라고 한다.

▲ 봉숭아꽃 고운 교무님의 오막살이
ⓒ2005 김대호
교무님 다원도 잡초가 무성하다

▲ 가을볕에 검게 그을린 오주은 교무님의 미소
ⓒ2005 김대호
며칠 후 날을 잡아 완도에 있는 오주은 교무님의 청해진 다원을 찾아 갔다. 원불교 교무하면 동백기름으로 가지런히 쪽진 머리에 흰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연상하게 되는데 홀로 산중에서 수천 평의 차밭을 일구시는 분이라 교무님은 늘 여기저기 기운 작업복 차림이다.

밭에서 일하시다 반겨 하시며 새로 지은 차방으로 안내하신다. 최근의 몇 가지 사건에 상처받은 내 마음을 말씀 드렸더니 화두처럼 몇 말씀 던지고 가신다.

'세상이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사람이 세상과 사람에 대해 무리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상처를 준다. 물욕보다 더 끊기 힘든 건 인연의 끈이다. 인연에 집착하지 말라.'

교무님은 땅에 대한 생각도 훈장님처럼 확고하다. 지난번 월선리에 손수 만든 세작이며, 오룡차, 연차를 바리바리 싸오시면서 봄에 심은 차밭 주변에 김을 매고 있는 내 모습이 마땅치 않으셨을 것이다. 훈장님처럼 교무님에게도 땅에 대해 인간은 손님일 뿐이다.

▲ 향대와 목탁 둘 작은 교무님의 법당
ⓒ2005 김대호
'사람이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으면 사기당할 이유도 없다. 자신의 땀 흘린 양만큼 거둬들일 생각은 하지 않고 두 곱 세 곱을 바라기 때문에 그 틈을 사기꾼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땅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

▲ 풀인지 차나무인지 풀이 주인인 교무님의 무공해 차밭
ⓒ2005 김대호
청해진 다원도 잡초가 무성하다. 흑염소 몇 마리를 키우시는데 강아지처럼 풀어놓다 보니 이놈들에겐 천지가 놀이터요 먹을 것이다. 넘나드는 새들이나 들고양이가 제법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보면 교무님과 여러 해 안면을 튼 모양이다.

어느덧 도시를 떠나온 지 3년 세월이 지났다. '빠르게 보다 빠르게'만 요구되는 세파에 지치고 경쟁하고 미워하고 좌절하는 것에 지치고… 이렇듯 도시 부적응자인 나는 속도가 없는 그런 토굴에 숨고 싶었다.

▲ 강아지처럼 놓아 키우는 흑염소 개똥이
ⓒ2005 김대호
아마도 나는 도시와 달리 땅이 호락호락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나보다. 뒤뜰 노천극장에 잡초를 뽑고 베고를 수차례… 그러나 이미 잡초는 내 허리를 딛고 섰다. '냅두면 잡초가 이기든 잔디가 이기든 아니면 화해를 하던 결판을 낼 건데 풀싸움이 사람이 왜 참견을 하냐'는 훈장님의 말씀이 새롭다.

인병선 선생님도, 훈장님도, 오주운 교무님도 수줍던 스무살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가을볕에 얼굴도 다 태우고 이름 모를 풀꽃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는 가을 앞에 서서 한가로이 국화향에 취한다 한들 그 누가 탓할 것인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이 같은 국화 향이거늘….'

인병선 선생님은 도시에서, 박인수 훈장님은 산에서, 오주은 교무님은 섬에서 때와 장소는 다르지만 가을날의 소중한 인연들을 일구고 계셨다. 가을볕이 고운 이유는 그 볕을 받아 안는 가을 산하가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 손수 만든 발효차를 선 보이시는 교무님
ⓒ2005 김대호
그런데 나의 조급증은 그 인연의 기서전결은 빼 버리고 사건을 단절적으로 본다. 결과로 매사를 판단한다. 스무살 처녀에게 세 어른처럼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이 같은 국화꽃이 되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옛부터 그랬듯이 여전히 길을 끝이 없고 옛사람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길을 간다. 길은 끝이 없고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잠시 쉬어 갈 뿐이다. 나는 이제 겨우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