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제도, 이대로 안놔둔다!<오마이뉴스, 2005.12.17>

2006.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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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제도, 이대로 안놔둔다!"
유홍준 문화재청장,'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대토론회'서 의지 밝혀

 

우리 전통 문화계의 뜨거운 감자인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을 위한 대토론회'가 문화재청 주최로 16일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다. 계획된 시간만 점심시간을 빼고도 7시간에 달하는 말 그대로 '대토론회'였다.

▲ 장장 7시간의 마라톤 토론회. 왼쪽부터 이병옥(용인대) 김석명(고성농요 예능보유자) 윤미용(전 문화재위원) 정병호(중앙대 명예교수) 임재해(안동대) 곽대웅(홍익대) 인병선(짚풀생활사박물관장) 이장열(서울시문화재위원) 임장혁(중앙대) 한양명(안동대)
ⓒ 곽교신
이날 토론회는 안동대 임재해 교수의 사회로 9명의 패널이 자유 토론 형식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주로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보유자(이하 보유자)들로 구성된 방청객들이 질문성 의견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패널들은 자유 발언 형식을 취하면서도 지정과정의 경직성, 보유자의 문화권력화, 취약 종목 지원 방법, 보유자 종신제 존폐 및 명예보유자 제도 등 이미 부각되어 있는 무형문화재 제도의 모든 문제점들을 거의 모두 열거하며 토론하였다.

같은 주제로 지난 4월에 있었던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발표회'는 문화재청으로부터 특정 종목에 대한 조사연구 용역을 의뢰 받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자신의 연구 의견을 발표한 형식이어서 제시 의견의 핵심이 뚜렷하였다. 그러나 이번 대토론회는 그 진행 방식의 한계상 4월의 발표회에 비하면 다소 산만한 분위기여서 장시간 연속 토론임에도 토론 주제가 선명히 부각되지는 않았다.

주요 방청객인 보유자들이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정부 지원 혜택을 늘릴 것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등 무형문화재 제도를 대승적으로 걱정한다기보다 소수의 이권 토론에 그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나마 사회를 맡은 임재해 교수의 단호하고 냉정한 의사 진행이 토론 주제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참석자들의 후견이었다.

이번 토론회를 열면서 문화재청이 내걸었던 "무형문화재 제도에 관한 한 누구의 무슨 말이든지 듣겠다"는 입장은 토론시간 내내 시종일관 차분히 유지된 것으로 보였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유례없이 7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앉아 토론 내용을 메모하고 필요한 경우 패널 및 방청객의 질의성 의견에 보충 답변을 하는 등 이 제도의 개선에 문화재청 및 청장이 특별하고 강한 관심과 의지가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유 청장은 서두 발언을 통해 "이 토론회를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의 연례 통과의례성 또는 구색 갖추기의 전시성 행사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무형문화재 제도를 반드시 고치겠다는 의지로 의견을 듣고자 하는 것이니 문화재청을 믿어 달라"며 토론회에 임하는 문화재청의 자세를 언급했다.

패널들은 한 번 지정된 보유자 자격의 종신 보장에 대해 오랜 시간을 할애하며 강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종신제가 해당 분야에서의 보유자 권한을 필요 이상으로 강화시켰고 결국은 문화권력화되면서 무형문화재 지정의 본질적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데에 동의하였는데 이는 이 제도의 핵심 문제점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적된 바 있다.

종신 지정제의 폐해에 대한 대안으로 정기적인 보유 자격 재심의제(이병옥 등 다수), 보유자 임기제(임재해) 등이 제시되었다. 지정 과정의 경직성에 대해서는, 아예 60년대의 인간문화재 지정 과정 폐습이 아직까지도 신규 종목 지정 절차에서 일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이장열)은 관련자 모두가 비장할 정도의 지적이었다.

비지정 종목의 사회문화적 소외 현상도 거론되었는데, 지정받은 종목이라 하더라도 보유자가 소속하지 않은 전승 계보는 그 계보의 기예능 중요도에 상관없이 사멸화하는 문제점도 지적(한양명)되었다.

또 보유 종목을 영상 콘텐츠화하고 그것을 문화재청에서 대형 서버로 총괄 관리하여 전 국민이 인터넷으로 언제든 무형문화재에 쉽게 접근하여 국민의 전통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고 학습까지도 가능하게 하자는 제안(인병선)도 나왔다. 이는 무형문화재 제도를 대체할 완전한 대안은 아니지만 획기적 제안이어서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주로 젊은 방청객의 동의 반응이 많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반드시 고쳐야 하는 제도다"

유 청장은 마침 말에서 "이 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앞으로 인기 분야와 비인기 분야, 보유자와 전수조교 등 참석자를 세밀히 분류하여 보다 솔직한 얘기를 듣는 자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며 이날 토론과 유사한 광범위한 여론 수렴의 장을 계속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늘 뜨거운 감자인 무형문화재 제도의 개선 필요성은 관련 행정가는 물론 보유자를 비롯한 각 지정 분야 당사자들이 모두 공감하면서도 누구도 선뜻 개혁을 공언하거나 시행하지 못하고 본질의 개혁이 없는 채 30년 넘게 시행되어 왔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유홍준 청장은 "문화재청은 제도의 개혁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다. 무형문화재 제도를 이대로 놔두지 않겠으며 반드시 고친다"며 확고한 개혁 의지를 보였다.

60년대 군사 정권 시절에 인간문화재란 권위적 호칭을 시작으로 분야에 따라서는 충동적으로 보유자가 지정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통 문화에 미치는 중요성에 비해 이제까지 다소 방만하게 운영된 것이 사실인 무형문화재 제도가, 이번에는 어떤 형식으로든 단순한 부분 개선을 뛰어 넘은 혁신적 개혁이 이뤄질 것이 조심스레 기대된다.

일정이 바쁘기로 소문난 유홍준 청장의 '7시간 연속 메모'가 무엇을 주목하였는지는 청장만이 알 일이나, 결과가 어떤 모습의 무형문화재 제도 개혁으로 나타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