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애기봉에서 펼치는 통일한국 한마당-<오마이뉴스,2006-06-8>

2006.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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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애기봉에서 펼치는 통일한국 한마당
10일 제3회 '민통선 애기봉 문학축전' 열려
   이종찬(lsr) 기자   
▲ <민통선 애기봉 문학축전> 팸플릿
ⓒ 한국문학평화포럼
밤마다 나는 북한여자와 잠을 자지만/ 아들 한번 고구려 사내놈처럼 낳으려고/ 그녀와 대한민국 전체로 보름달로 놀아나지만/ 딸 한번 평안도 기생같이 쏘옥 빼내려고/ 그녀의 숨겨진 땅을 진흙덩이로 뒹굴지만/ 늪수렁에 감춰진 열쇠를 맨주먹으로 비틀지만 첫새벽에 먼저 일어나 잠든 그녀를 보면/ 육이오 때 밀리어왔다가 지금은 고작/ 밥벌이로 술집을 차린 피난민 여자가 아닌가/ 팽팽했던 몸은 어느덧 전국으로 늙어빠져버려/ 저무는 공사판이나 좇아다니며 기웃기웃거리는/ 비 맞은 암탉이 아닌가 쑥구렁의 도둑고양이가 아닌가/ 나 같은 막벌이나 끙끙 보듬고 식은땀 흘리는/ 뻣세디 뻣센 늦가을의 쑥이파리가 아닌가/ 내가 밤마다 만나는 북한여자는/ 내 살덩이를 삼팔선인 양 물어뜯으며 흐느낀다/ 육체여, 그날 내려온 북한 여자라도 곁에 있으니까/ 나 같은 막벌이꾼도 간혹 허전함을 달랜다/ 내 가슴 구석에도 텅 비어 있는 황량한 북한땅을/ 남으로 내려온 그녀의 늙은 몸으로나마 채운다/ 그녀의 쭈그러진 살에서나마 북한땅을 더듬는다.

- 김준태 <북한여자> 모두


조선시대 기생 애기(愛妓)와 평양감사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애기봉. 조선 인조 14년, 병자호란(1636~1637)이 일어나자 애기와 평양감사는 서둘러 한양을 향해 피난을 떠난다. 하지만 피난을 가는 도중에 평양감사가 그만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가버리고, 애기는 혼자 남게 된다.

그때부터 애기는 날마다 쑥갓머리산(하성면 가금리 소재) 꼭대기에 올라 평양감사가 끌려간 북녘하늘을 바라보며 낭군(평양감사)이 하루속히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낭군이 돌아오지 않자 애기는 그만 병이 들고 만다. 애기는 죽기 전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낭군을 기다리던 쑥갓머리산 꼭대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6년. 한반도 서부 휴전선 경계 중 일반인이 다가가 북녘 땅을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곳, 김포 애기봉(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산 59-13). 손만 뻗으면 금세 닿을 것만 같은 북녘 땅. 하지만 그곳엔 지금도 분단의 벽, 이데올로기의 벽, 이산의 벽이 철조망의 가시가 되어 가슴을 콕콕 찌르고 있다.

강(임진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 오가지 못하는, 민족의 한을 품고 있는 김포 애기봉(愛妓峰). 애기봉에 얽힌 전설 또한 이산의 아픔이 짙게 배어 있다. 그래. 어쩌면 애기봉은 마치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미리 내다보고, 그 자리에 그렇게 외롭고 슬프게 서 있는지도 모른다.

▲ 애기봉
ⓒ 인터파크
"'민통선 애기봉 문학축전'은 민족의 화해와 공존공생하는 민족의 꿈을 문화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한마당이 될 것입니다. 특히 이번 축전은 북녘땅이 지척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여는 전국 규모의 문학축전으로 이번 행사가 한반도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임헌영(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이 일어난 지 56주년, 6·15공동선언 6주년을 앞두고 한국문학평화포럼(명예회장 고은, 회장 임헌영)에서 '민통선 애기봉 문학축전'을 연다.

이 축전은 통일한국의 그날을 앞당기고,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평화와 공존공생을 위해 전국의 문학예술인 70여 명이 분단의 현장에 모여 펼치는 평화축제 한마당이다.

오는 10일(토)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4시간 동안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애기봉 정상에서 열리는(사회 강기희, 소설가) 이번 행사는 김준태(조선대 문창과 교수, 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 시인과 이적(민통선평화교회 담임목사) 시인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여성 록가수 손현숙의 노래공연이 펼쳐진다.

이어 저녁 7시30분부터 시인 인병선(신동엽 시인 미망인)의 <벼랑 끝>, 시인 황학주의 <정말 살려면>, 시인 정우영의 <귀향>, 시인 조용미의 <바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시인 손택수의 <삼팔선>이 낭송되며, 김기인과 스스로춤모임의 아름다운 춤사위가 유월의 어두워오는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벼랑 끝에 선다.
종로를 걷다가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문득
발밑에 아득한 벼랑을 본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오로지
한 질문만을 하셨다.
얘야
언제 통일이 돼서 너희 오빠를 찾니
벼랑 끝에 선 얼굴로
절규하곤 하셨다.
마지막 임종하는 순간
어머니는
그 벼랑에서 뛰어내리며
어떤 대답을 들으셨을까.

하루에도 몇 번
벼랑 끝에 서서
이제는 내 것이 된
아득한 발밑을 굽어보며
괴로운 현기증에 시달린다.

- 인병선 <벼랑 끝> 모두


▲ 여의도에서 열린 우토로 문학축전
ⓒ 이종찬
저녁 8시부터는 민통선 어린이 최하랑, 전유성(키파아동센터), 윤보배(민통선아동센터)의 통일동시낭송, 작가 김지우의 '눈 덮인 허허벌판에 흰옷 입은 사람들이'(단편소설 해피 버쓰데이 중), 김포아동센터 어린이들의 '통일의 노래', 시인 서홍관, 김현지, 윤한택, 김두안, 박철의 시낭송, 무당시인 오우열의 '통일소원쑥대머리', 가수 김현성의 노래가 잇따라 펼쳐진다.

한국문학평화포럼 홍일선(시인) 사무총장은 "우리는 21세기 세계사적 화두인 평화공존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실존, 존재의 형식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한 공생의 문제 등을 축전의 주제로 다루고자 한다"라며 "이번 축전은 남북통일과 민족의 공생공존에 무게를 두었다"고 말했다.

이승철 시인(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국장)은 "이번 축전의 백미는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민통선 애기봉에서 현역으로 복무한 김준태 시인의 기조강연"이라고 못 박는다. 이 시인은 "이날 김준태 선생은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해 정치통일, 경제통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 통일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의 진행을 맡은 정기복 시인은 "한국문학평화포럼은 그동안 전국의 문화소외 지역, 현장과 이슈가 살아있는 곳을 직접 찾아다님으로써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과 관심을 받은 바 있다"며 "이는 문예창작의 질적 향상과 문학의 사회적 책무를 다한 뜻 깊은 문학행사"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지난 달 20일 전남 고흥에서 열린 고흥 녹동문학축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독도문학예술축전, 단양철쭉 문학축전을 잇따라 열었다. 이어 오는 9월에는 안산문학축전, 10월에는 영천문학축전을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