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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저녁.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짚풀사 생활박물관에서 <흙·짚·건축전>에서 인병선 관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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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영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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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새집 증후군, 각종 호흡기 질환 및 알 수 없는 두통…. 언제부터인가 심심치 않게 들리던 단어들이 이제는 현대 도시인들의 삶에 밀착해 버렸다. 단단하다 못해 차가운 질감의 현대 건축물들. 콘크리트의 밀도는 과거보다 한층 촘촘해졌다. 공극 없는 벽과 바닥.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외연을 뽐내지만 과연 그 안에 삶을 꾸린 이들의 일상은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할까. 인간은 자연을 밀어낸 자리에 현대과학을 쌓아 올렸다. 평당 매매가는 높이만큼 올라가겠지만, 행복지수마저 함께 상승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대안은 없을까. 혹 전통의 그것, 흙과 짚이 공존한다면?
재개발과 뉴타운 속 마지막 보금자리, 흙과 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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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과 짚 사이에 뿌리를 내린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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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물음에서 시작한 <한국 흙건축 연구회>의 '흙·짚·건축전(Earth·Straw·Architecture)'이 서울 대학로의 짚풀 생활사 박물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흙건축 분야에 전문가로 일하는 교수, 건축가, 연구자, 예술인들이 각자만의 흙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리고, 흙이 적용되는 건축물의 드로잉에서부터 디테일까지의 제작과정을 전시작품으로 삼아 흙건축의 탄생 과정을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9일 저녁 소탈한 개막 현장. 고유의 짚풀연구에 힘쓰고 있는 인병선 짚풀 생활사 박물관장은 전통건축에서 흙과 짚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흙만으로는 집을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볏짚을 썰어 넣었을 때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는 겁니다. 그간 서양건축을 따라하며 모든 벽을 시멘트화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흙과 짚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디자인적인 면도 고려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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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을 고려한 여러 형태의 흙과 짚 전시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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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병선 관장은 흙과 짚은 생태건축으로서 의미를 가진다며 아토피 등 현대 건축물이 가져온 질환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흙과 짚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골조는 시멘트를 유지하더라도 벽 등은 흙과 짚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벽이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한기나 더위를 품었다 내뿜는 조절능력이 있습니다. 시멘트는 그런 능력이 없지요. 흙과 짚은 재개발과 뉴타운으로 상징되는 현대사회가 숨 쉴, 마지막 보금자리입니다."
흙건축이 옛 방식이라는 사고 자체가 구태의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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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은 짚으로 엮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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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생각하면 지구 대부분 사람이 현대건축의 상징인 시멘트 영향 아래 살고 있을 것 같지만, 현재도 세계 인구의 30%인 15억 명의 인구가 흙으로 만들어진 거주지에서 삶을 영위한다. 그 방식은 다양하지만 인류의 삶이 투영된 일종의 문화유산인 셈. 전시회장에는 한편 거친 듯하지만, 소담스러운 전시물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흙과 짚 사이에 뿌리를 내린 식물이 생명을 자랑하고, 아크릴과 철 사이에 놓인 벽돌 틈으로 물이 흘러내리며 '상생'이란 작품명을 이해시킨다. 그리고 벽돌은 일반건축용이 아닌 투수 흙벽돌이다. '달을 머금은 목련'이 보이고 가을날의 잠자리와 코스모스가 표현되는 등 흙과 짚은 건축의 한 소재이자 그 자체로도 심미안을 자극시킨다. 흙건축 연구회의 운영위원이자 목포대 건축학부 교수를 맡고 있는 황혜주(43) 교수는 흙건축이 옛날의 재료, 구태의연한 건축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의 인식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흙과 짚은 현대건축물과 함께 어울려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또한 역사가 깊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물결 속에서 단절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반면 유럽 등지에선 무척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을 보여주면 굉장히 놀랍니다. 좋은 전통이었던 만큼 현대건축과 조화되도록 노력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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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과 짚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박재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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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수는 친환경에 따른 건강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살려 낼 수 있는 방안이 흙건축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전해왔다.
"자연의 소중함, 사람 간 관계의 소중함 등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흙건축으로 얻을 수 있는 건강은 나뿐 만이 아닌 이웃의 건강, 자연의 건강을 고려할 수 있는 건강이 됩니다."
한편 이날 개막식에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개혁공천에 앞장서 '저승사자'란 별명을 얻었던 박재승 변호사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박 변호사는 인사말을 통해 자신이 느꼈던 흙과 짚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줘 눈길을 끌었다.
"어린 시절 하도 흙을 파며 놀아 손톱이 망가질 정도였다. 흙에는 씨앗과 동물, 식물 등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모든 것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다. 또 짚을 꼬고 냄새를 맡으며 자랐고, 모든 생활용품을 짚으로 만들어 썼다. 흙과 짚은 곧 고향이다."
흙·짚·건축전은 10월 5일까지 짚풀생활사 박물관(www.zipul.co.kr)에서 열리며, 기타 흙건축에 대한 안내는 한국 흙건축연구회(www.earth.or.kr)에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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