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공감] 의대 교수로 박물관 관장으로 “철학을 나눕니다”

2023.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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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정책주간지 K-공감

* 기자명 : 권민희

* 발행일 : 2023.02.16


생태 가치 전하는 신좌섭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사진 C영상미디어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자리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은 짚과 풀로 만든 민속자료를 전시하는 세계 유일의 짚·풀 전문박물관입니다. 1993년 개관해 짚신, 망태기, 멍석, 달걀꾸러미, 새끼줄 등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만든 생활용품과 공예품 등 민속자료 35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짚과 풀은 우리 땅에서 나는 자연재이며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활용한 전통재료입니다.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요즘 자연재를 활용한 조상들의 과학과 지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2대 관장인 신좌섭 관장은 박물관 설립자인 인병선 초대 관장의 아들입니다. 현직 서울대 의대 주임교수이기도 합니다. 신 관장은 의대를 졸업한 후에도 역사학과 교육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서울대 의대에서 의학교육학이라는 다소 낯선 분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는 일상생활 속 민속 유물들을 관람하고 여러 가지 짚풀 체험 프로그램까지 즐길 수 있다.  사진 짚풀생활사박물관


가업과 철학을 잇는 소중한 공간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만난 신 관장은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박물관 관장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짚풀 관련 유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초부터입니다. 40여 년을 한 분야에 쏟은 어머니의 열정을 잇고자 2017년부터 관장직을 맡았습니다. 어머니의 삶이 온전하게 담겨 있는 유물에 대한 애정도 있었습니다.

짚풀로 만든 유물들을 보면 묘한 깊이와 따스함을 느낍니다. 아내도 함께 일을 하고 있으니 가업이라 할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해왔지만 박물관 설립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터라 그 역시 이곳에 대한 마음이 특별합니다.

그는 코로나19가 대유행한 지난 3년은 사립박물관들에 엄청난 시련의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관람객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단체교육도 불가능했습니다. “학교에 보릿대를 우편으로 보내고 온라인으로 여치집 만들기 체험교육을 하는 등 코로나19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지만 절대적인 수입 감소와 정체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정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수많은 사립박물관이 존폐 기로에 처해 있을 겁니다.”

신 관장은 “우리나라에는 작은 규모의 사립박물관이 370여 개 있다. 어머니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짚풀생활사박물관으로 승화시켰듯이 대부분 사립박물관은 나름의 사연과 열정으로 우리의 문화를 보존·연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초대 관장인 인병선 관장이 처음 박물관을 설립한 1993년만 해도 ‘작은’ ‘특수’ ‘사립’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박물관이 몇 개 없던 시절입니다.인병선 관장은 일본에서 소규모의 개성 있는 특수박물관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보물급의 값나가는 유물이 아니라 일상 속의 생활용구들을 보존하고 연구한다는 측면에서 앞선 시도였습니다.

이곳은 전시와 연구, 체험교육 세 개의 기능이 잘 어우러진 박물관이라는 점도 관람객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색있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을 뿐더러 생활용구를 만드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기록해뒀고 짚풀문화에 대한 연구서도 여러 편 출간했습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는 일상생활 속 민속 유물들을 관람하고 여러 가지 짚풀 체험 프로그램까지 즐길 수 있다. 사진 짚풀생활사박물관



전시·연구·체험의 장으로 선두 역할

그는 개인적으로 짚풀생활사박물관은 집안의 뿌리와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 공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생태학적 완전성’을 배우는 통로 역할입니다.

세 개 공간으로 나눠진 전시실에는 둥구미, 멍석, 짚신, 망태, 왕골자리, 도롱이, 삿갓, 달걀꾸러미 등 생활용구와 농기구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볏짚, 보릿짚, 밀짚, 싸리, 부들, 칡, 왕골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것들로 계절과 생명력을 경험하도록 돕습니다.상설전시 외에 ‘망·망태·망태기전’ ‘맥간공예 보릿짚·밀짚 특별전’ ‘중국 윈난성 소수민족 생활문화전’ ‘곡식인형전’ 등 특색있는 전시도 기획해왔습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VR 전시실도 마련돼 있습니다.

관람객은 짚풀로 만들어진 유물들을 보면서 조상들의 지혜와 해학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추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짚풀로 엮은 유물에는 삶과 노동의 애환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정겹고 따뜻합니다. 보물급 청자나 백자, 금관에 뒤처지지 않는 소중한 전통문화의 자취입니다.

신 관장은 교수로서 정년이 1년 반 남았습니다. 현재 그는 서울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주임교수, 전국 의대 교수들을 교육하는 서울대 의학교육연수원 원장,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세계보건기구 교육개발협력센터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은 세 학기를 잘 마무리한 후 우리나라 박물관들의 생태계를 개선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입니다. 한국박물관협회, 한국사립박물관협회 등의 조직을 활성화하는 일에도 힘을 보태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권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