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본 평양 사람들 [2005. 6. 21]

2005.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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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평양 사람들
평양에 간 신동엽 시인의 부인 인병선씨
텍스트만보기   곽교신(iiidaum) 기자   
▲ 반가운 마음과 웃음까지 동원할 수는 없는 법. 주민들 얼굴을 찬찬히 보면 동포로서의 연민이 느껴진다.
ⓒ2005 인병선
인병선씨는 가극 '금강'의 원작자인 고 신동엽 시인의 부인으로, 서사시 '금강'이 태동되던 때의 작가 속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 자신은 '인진아'로 신동엽 시인은 '신하늬'로 각각 극중에서 등장한다.

이런 속사정을 지닌 그가 기층 민중의 고초를 사랑으로 바라보던 고 신동엽 시인의 시각으로 평양을 사진에 담아왔다.

평양 근처 용강이 고향이고 평양에서 11살까지 '보통국민학교'를 다녔으므로 그에게 평양은 그대로 고향 땅과 같다. 고향을 떠난 후 첫 번째인 이번 방북에서 그는 요절한 신동엽 시인 부인의 눈으로, 또 고향을 찾은 평범한 엄마의 애정 어린 눈으로 이북의 동포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사진을 찍었다.

그와 인터뷰를 한 날은 그가 북한에서 돌아온 지 3일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면 자꾸 가슴이 저리다"고 되뇌듯 말했다.

군사정권 시절 우리도 통반 별로 구역과 인원을 할당 받아 길거리 환영 행사에 나갔던 적이 있었듯이, 북한의 체제를 생각하면 사진 속의 주민들은 물론 동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까지 동원된 것은 아님을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사랑이 담긴 마음은 표정으로 읽혀진다. 연인 사이엔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표정에서도 사랑을 읽어낸다. 그 진솔함은 일부러 만들 수도 숨길 수도 없다. 사진으로 찍힌 그들의 순간 표정에서, 쌀을 보내주고 비료를 보내준 남쪽의 동포에게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소박한 진심을 읽을 수 있다.

행렬이 지나가는 한 순간을 위해 빗속에서 오래 기다렸을 그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찡했다는 인병선씨의 말처럼, 편집을 위해 주민들의 표정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던 기자도 가슴이 저렸다.

그 '알싸한 가슴 저림'은 우리가 자주 북으로 가고 저들도 자주 남으로 내려와야 하는 원초적인 이유다. 그리움은 사랑의 가장 진솔한 표현이다. 빗속에서 오래 기다리고도 저렇게 밝은 표정이 꾸며서 되는 것일까. 동원된 주민으로만 생각하기엔 그들의 표정엔 반가움이 너무도 진하다.

▲ 학생소년궁전에서 방북단을 기다리던 어린이들
ⓒ2005 인병선
인병선씨가 찍어 온 사진에는 어린이 사진이 많았다. 일부러 찍은 것이냐고 물으니 찍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 학생소년궁전에서 인병선씨가 자청한 한 컷트.
ⓒ2005 인병선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들의 습관과 인식이 어떤지 몰라 망설이다가 사진을 찍을 때 사진 맨 오른쪽에 선 여학생의 손가락을 살짝 잡으니, 그 학생은 손바닥으로 인병선씨의 손을 정겹게 감싸더라는 말을 전하며 쓸쓸히 웃는다.

그리워하고 반가워하는 것은 먹고 자는 일처럼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이다. 남과 북은 언제까지 반가움조차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며 만나야 하나.

▲ 분단의 세월은 북한의 자수를 독자적으로 특이하게 변형시켰다.
ⓒ2005 인병선
북한의 자수는 회화 기법의 한 장르로 불러야 할 정도로 독특한 경지를 이루고 있다. 색실로 엮어내는 오묘한 그러데이션은 세밀한 손재주에 능한 한민족 공통의 장기에서 비롯됨이 아닐까.

▲ 천리마 동상 앞에서 행진 대기. 개막식이 열리는 김일성 경기장까지 도보로 행진하는 프로그램.
ⓒ2005 인병선
행사 프로그램의 하나인 '민족대행진'을 위해 천리마 동상 앞에 집합할 때는 날이 어둡기 시작했고 비까지 내렸다. 약 2km의 김일성 경기장까지 걷기엔 무리다 싶었으나 북측은 우비를 나눠주며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 진회색 우비로 통일시킨 모습에 서로 웃고.
ⓒ2005 인병선
비 내리는 어스름 저녁, 거대한 천리마 동상 밑에 진회색 비옷으로 통일하고 서 있는 남측의 참가자들의 분위기는 '그로테스크' 해보였다고 인병선씨는 말한다.

그러나 남측 참가자들의 웃음에서 필자는 그로테스크보다는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외관을 일제히 진회색 우비로 갈아 입혀도 정신은 일사불란한 통제가 안 되는 것이 자유의 본질이다. 우린 북측에 그것을 전달해야 한다.

▲ 경기장에 미리 입장하고 기다리던 북한 주민들
ⓒ2005 인병선
▲ 남측 방문단의 입장
ⓒ2005 인병선
10만을 수용하는 김일성 경기장에는 미리 입장해 대기하는 북한 주민들로 가득하다. 스탠드 위의 시계가 8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 날 행사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간 시간은 밤 11시가 다되어서였다고.

▲ 독도까지 잊지 않은 매스게임 한반도.
ⓒ2005 인병선
북한의 매스게임은 명성이 높다. 한반도 모양을 만들며 독도를 넣는 것을 잊지 않음을 보며 다시 한 번 민족 공동체를 느낀다. 독도는 사진에서 한 끝만 나왔다. 약 천여 명의 공연.

인병선씨는 평양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방학 때가 되면 평양 근처 '용강'의 집에서 묵곤 했다고 한다. 이번 평양 방문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 아이들 나이 때쯤 고향을 떠나 그도 이제 70세를 넘었다.

▲ 북쪽 어린이들의 깨끗하고 천진스런 미소
ⓒ2005 인병선
귀소 본능은 모든 동물 공통의 기본 본능이다. 고향의 흙이라도 만지고 싶은 것은 꼭 우리만의 의식 체계가 아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컵에 담아 늘 지니고 다니던 잃어버린 조국 폴란드의 흙 한줌을 덮고 파리 근교 묘지에 묻혔다.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집념을 다분히 동양적 정서라거나 북쪽을 잘 모르는 감상적 접근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단정이다.

평범한 국민의 통일 염원은 냉정한 이념이나 복잡한 정치적 법적 논리에 바탕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땅 우리 동포에게 가고 싶을 뿐인 것이다.
2005-06-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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