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사랑으로 아버지의 정으로-조선일보 2006-03-10

2006.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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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엽
김응교 지음|현암사|224쪽|1만2000원

[조선일보 김태훈기자]

지금도 다시 읽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 ‘껍데기는 가라’ ‘산에 언덕에’ 그리고 ‘금강’을 빚어낸 ‘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 그러나 이 책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그의 작품세계를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그가 부인 인병선(71·짚풀생활사박물관장) 여사와 젊을 때 주고받은 연애편지, 초등학교 시절 성적표, 일제하 검도 교육을 받을 때의 귀엽지만 풀 죽어 보이는 얼굴, 그리고 한창 시를 쓰며 잘나가면서 한편으로는 죽음으로 다가서던 1960년대 활동을 기록한 사진들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연서(戀書)는 시인의 연애 ‘기술’을 엿보게 한다. ‘추경(秋憬·인병선의 아호)에게. 아름다운 아침이었습니다. 이렇게 똑똑한 일기(日氣)가 추경 계신 서울에도 베풀어졌기를 바랍니다…’(1954년 1월22일 신동엽의 편지)

‘석림(石林·신동엽의 아호)! 석림이 그 어느 날에는 꼭 쓰고야 말 것이라고 몇 번이나 예언하시던 편지를 기어코 오늘 씁니다…’(1954년 3월 7일 인병선의 편지)

신동엽 시인의 ‘찬란한 마지막 10년’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작품 ‘이야기하는 쟁이꾼의 대지’가 당선되면서 열렸다. 새해 첫날 시인은 그 기쁨을 아내에게 엽서로 전했다.

‘경에게. 겨우 시인 등록이 된 셈인가 보오. 조선일보에 입선되었구료.…이런 때 옆에 있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소만…’(1959년 1월1일)

6·25 와중에 날로 먹은 민물 게 때문에 생긴 디스토마가 과로와 겹치면서 그를 간암으로 몰고 갔다. 신동엽 시인이 죽음 며칠 전까지도 자녀들과 함께 식사할 때 자신의 6·25 생환기를 웃으며 들려줬다는 맏딸(정섭)의 증언은 자녀에게 미안해하며 최후를 준비했을 그의 내면을 보는 것 같아 눈물겹다.

책은 단숨에 읽힌다.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그 이유는 시인과 그의 선친 신연순옹, 그리고 부인 인병선씨의 기록정신때문이다. 선친은 아들의 성적표는 물론 가정통신과 학교입시공문까지 남겼다. 아내는 남편이 꼼꼼히 모은 창작노트와 원고를 비닐 파일에 넣어 테이프로 봉해 박스에 분류했으며, 남편 관련 신문과 잡지 기사를 스크랩하고, 사진은 모두 슬라이드로 만들었다. 그래서 아들을 사랑한 선친의 정과, 12년 같이 살고 먼저 떠난 남편을 평생 자랑스러워한 아내의 사랑이 함께 읽히는 책이 이루어졌다.

(김태훈기자 [ scoop87.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