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마지막 보는 신동엽?

2007.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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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마지막 보는 신동엽?
'공간S' 새로 마련한 짚풀생활사박물관 신동엽 특별전 열어
짚풀생활사박물관에 새로 마련된 전시실 개관 기념으로 10월 1일부터 11월 4일까지 열리는 '신동엽의 노트를 열다' 전시실 입구
ⓒ 김기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온전한 민주주의가 자리잡았을까? 대체로 그렇지 않냐고 대답할 이가 많을 듯싶다. 이 정도면 민주주의시대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 신동엽이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그는 어찌 대답했을 지 궁금해진다.

짚풀생활사박물관(관장 인병선) 2층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공간S’의 첫 번째 기획전 ‘신동엽의 노트를 열다(10.1~11.4)’를 둘러보면서 언뜻 떠오른 생각이다. 서울 명륜동에 위치한 짚풀사생활사박물관 인병선 관장이 시인 신동엽의 아내인 것은 이제 꽤나 알려진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물이나 밥보다 갈급했던 시대에 신동엽은 지금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젊은이들에게는 큰 존재였으나 그는 너무 일찍 떠났다. 지금은 그의 시집을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할 필요가 없다.

신동엽이 민주주의의 척도는 아니겠으나 적어도 그 시절, ‘그러므로 껍데기는 가라’했던 듣지 않아도 쨍쨍한 시인의 일갈은 적어도 희망이자 신념에 용기가 더 해주었다. 이제 갓 청년들에게는 낯선 감상이겠으나 20세기 후반 고난의 시대를 겪은 지금의 중년들에게는 아직도 가슴 설레게 하는 이름인 것이다.

전시실에는 육필 원고를 컴퓨터 화면으로도 볼 수 있도록 했다.
ⓒ 김기
 

얼마 전까지는 박물관을 찾는 어린이들이 짚을 이용한 이런저런 공예를 체험하던 박물관 2층에 마련된 신동엽 특별전시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상념에 잠기게 된다. 이번 전시는 신동엽 시인의 둘째 아들(신우섭)이 부관장으로 임무를 맡아 처음 기획한 것이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잊지 않고 있었던 당연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2003년 부여시에 신동엽 생가를 기증하고, 이후 신동엽 문학관에 모든 유품을 넘기기로 결정한 시인의 가족들의 마지막 기념이 아닐까도 싶다. 인병선 관장은 기증을 위해 오랫동안 전담 직원을 두어 자료 및 유품들을 정리해왔다.

그러나 시인의 생가는 작년 문화재청에 의해 근대유적지로 지정되었으나, 폐가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관리가 소홀해 가족들은 속이 타 들어가고 있다.

최근 부여시가 신동엽 문학관 건립예산을 26억으로 밝혔으나 애초에는 이보다 훨씬 적은 액수를 책정했다가 인병선 관장의 거센 반발에 증액한 것이며, 그조차 공개적인 과정 없이 건축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번 전시를 열게 된 것은 무성의한 부여시에 대한 숨겨진 메시지도 있어 보인다.

벽면에 빼곡이 걸린 시인의 육필 원고들
ⓒ 김기
 
 

오랫동안 별렸던 2층 기획전시실도 마련하고, 적잖이 을씨년스러워서 드날 때마다 마음에 걸렸던 한옥을 새롭게 단장애서 교육체험관으로 새로 선보이는 등 짚풀생활사박물관으로는 경사가 겹친 상황에서도 어두운 표정을 보인 인병선 관장은 무겁게 말했다.

“부여시에서 신동엽 시인을 위해 문학관을 건립하겠다고 나선 것은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에요. 그렇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기대한대로 되지 않는다면 애초에 생가를 기증한 것도, 육필 원고 등 모든 유품을 문학관을 위해 기증하기로 한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이 공간은 우리 박물관 기획전을 비롯해 다른 박물관들의 전시에도 활용되도록 계획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달리 사용될 수 있을 겁니다”

 

전시실을 들어서자마자 시인의 사진이 손님을 맞는다. 그 오른쪽에 늘어놓은 지갑.신분증, 도장 들을 지나자니 마치 시인이 하나씩 빼놓고 홀가분하게 저쪽 벽에 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김기
 

평소 같으면 전시실을 함께 돌며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인 추억을 풀어 놓았을 인병선 관장은 혼자 둘러보라며 전시실 입구만 손으로 가리켰다.

전시실을 들어서니 먼저 객을 맞는 것은 전면에 놓인 시인의 젊고 패기 넘치는 사진이었다. 그 탓에 하마터면 놓칠 수 있는 것이 입구 바로 앞 벽면에 전시된 시인의 소품들이다. 지갑, 도장, 신분증 등.

전시 제목이 ‘노트를 열다’이듯이 이번 전시에는 시인의 육필 원고와 시인의 아내로서만 누릴 수 있었던 시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마흔의 짧은 삶을 살다간 시인의 사진들과 인쇄된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창작의 고심 등을 수정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원고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전시실 이모저모를 둘러보면 아내로서 또한 같은 문학동지로서 시인 신동엽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 흔적이 역력함을 알 수 있다. 결코 넓지 않은 전시실인 만큼 빨리 보자면 십 분만에도 다 볼 수 있다. 그러나 벽면에 빼곡한 육필 원고 하나 하나를 모두 새기자면 감상시간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에서 신동엽 시인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 문학관 건립이 제대로 추진되고, 생가 등이 잘 관리된다는 신뢰가 생긴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특별전을 위해 마련된 짚풀생활사박물관 2층 공간은 붙여진 이름처럼 신동엽기념관이 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을 가본 적 있다면 아마 깜작 놀랄 것이다. 을씨년스럽던 한옥이 새단장을 마치고 짚풀 교육 및 체험관으로 탈바꿈하였다. 제법 너른 마당도 확보되어 어린이들이 이런저런 마당놀이를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 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