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할머니의 짚풀 이야기

2007.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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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할머니의 짚풀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 읽는 책 46]지푸라기 할머니 인병선< 짚처럼 풀처럼>

'한여름 땡볕을 꿋꿋하게 이겨 내며 키운 곡식을 우리한테 내주고도 모자라 마지막 남은 껍데기까지 모두 바치는 지푸라기. 모든 사람들이 지푸라기처럼 산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지푸라기의 고마움과 아름다움을 우리가 이어가도 좋으련만…, 바로 이거야! 짚 문화 발굴. 이거야 말로 내가 여태 찾던 거야. 더 늦기 전에 우리만의 것을 찾아야 해. 아름다운 우리의 농민 문화를 이렇게 속절없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 농민 문화의 위대한 뿌리에 다가가는 거야. 찾아내고 기록해서 남길 건 남겨야 해. 이게 바로 내가 할 일이야.'

 

남편(신동엽 시인)을 먼저 보낸 인병선(73) 여사가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한다. 그리고 '민학회'란 우리의 전통 문화 연구 모임에 가입하여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의 답사 길에 한 농가에서 '낫거리(낫을 꽂아두는)를 만들고 있는 한 촌로, 짚공예 장인을 만나게 되면서 여사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만나게 된다.

짚과 풀로 만든 것들과 짚과 풀의 문화 속에 깃든 우리의 전통과 정서에 대한 연구와 보존이었다. 여사는 이 때 어렸을 적부터 예사로 보고 자랐던 짚·풀로 만든 것들을 찾아 전국의 농가들을 훑고 다닌다.

어떤 곳에서는 '농촌만 돌아다니며 노인들을 꼬드겨 공예품을 헐값에 사들여 비싼 값에 팔아 제 뱃속만 채우는 공예품 사기꾼'으로 몰려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의심의 눈빛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이 짚 문화 연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선뜻 내어주기도 한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수족을 쓰기 힘든 와중에도 여사의 짚 문화 연구를 도와주고자 마음 쓰는 충청도 중원군 어떤 할아버지의 마음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이렇게 몇 년, 전국을 돌아다니며 습기에 쉽게 썩고 저렴하면서 짱짱한 플라스틱 생활용품들에게 밀려나 버려지고 잊히는 짚과 띠, 억새와 같은 것들로 만든 생활용품 600여 가지를 발굴, 수집하고 만드는 법까지 배우게 된다.

"처음부터 박물관을 열 셈으로 짚이나 풀로 만든 물건을 모은 건 아니었어. 우연히 발견한 짚, 풀 문화의 아름다움에 빠져 살며 이것저것 모으다 보니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 박물관을 세울 마음을 먹은 것뿐이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문학을 하고 시를 쓰는 것은 나 말고도 많은 작가들이 할 수 있잖아. 하지만 짚, 풀 문화를 연구하고 정리해서 후손에 알리는 건 나 아니면 안 되겠다 싶었어. 그래서 서둘렀지. 농촌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우리는 옛 사진 속에서나 짚 문화를 봐야 할 거잖아."

시인의 아내, 시인으로 등단한 인병선 여사는 '시인의 길'대신 우리의 짚과 풀 문화 연구 및 재현에 많은 시간들을 바치게 된다. 여사의 이런 노력과 소신으로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볏짚 전문 박물관인 짚풀생활사박물관'을 개관하게 된다.

박물관(http://www.zipul.co.kr/)에는 현재 짚풀 관련 민속자료 3500점 외에 연장(도구) 200점, 조선 못 2000 점, 제기(祭器) 1000 점, 한옥 문 200세트가 전시중이며, 이종석 기증 유물 457점과 세계의 팽이 100종 500여점 등을 전시·소장하고 있다.

 

<짚처럼 풀처럼>은 짚풀생활사 박물관 관장인 인병선 여사의 짚풀 문화에 대한 그간의 애정과 소신, 박물관 개관까지의 일화와 함께 여사의 어린 시절과 농민 운동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신동엽 시인과의 만남에서 사별 등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짚풀 문화는 여사의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아스라한  기억과 추억 속에 그저 묻히고 말았을지도 모를 우리의 소중한 문화 중 하나다. 쉽게 썩고 쉽게 타는 등의 속성 상 돌이나 나무, 흙으로 빚어 구운 것들처럼 우리에게 전하는 것들은 그리 오래된 것들이 아니지만 농사를 인본으로 삼았던 우리 조상들이 끊임없이 만들어 쓰던 것들이다.

자손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금줄도, 걸음걸이에 없어서는 신발을 삼는데도 이 짚이 반드시 쓰였으며,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에도 짚은 반드시 쓰였다. 그야말로 짚과 함께 태어나 짚과 함께 살다가 짚과 함께 삶이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짚이 우리네 생활에서는 훨씬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유용하게 쓰였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짚을 말려 초가지붕을 이었으며 잘게 썰어 흙과 섞어 담을 쌓기도 하였다. 청국장과 메주를 띄우는데도 볏짚은 반드시 필요했고 소의 먹이로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새끼를 꼬아 멍석이나 방석, 소쿠리, 꼴망태는 물론 제웅처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이 생활에서 만들어 쓰던 것들은 대략 600여종. <짚처럼 풀처럼>은 이렇듯 우리 조상들의 삶과 밀접했고 우리의 옛 문화에 중요한 한 부분인, 우리의 유전자 속에 스며있을 짚풀 문화에 대한 인식과 중요성이 그 뼈대를 이룬다.

 

▲ <짚처럼 풀처럼> 출간 기념- 출판사와 짚풀생활사 박물관이 마련한 제3회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 짚풀 문화 체험
ⓒ 김현자
 

<짚처럼 풀처럼>은 제3회 서울 와우북 페스티벌(10월 5일~10월 7일)에서 만난 책이다. 아이들은 그림책이나 사극 등에서 보았던 짚을 무척 신기해하며 짚풀 생활사 박물관과 우리교육 출판사가 마련한 짚풀 문화 체험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생전 처음 만들어 보는 달걀 꾸러미 만드는 법 설명을 아이들은 무척 집지하게 들었다. 하지만 설명이 모두 끝나고 혼자 만들어 보려니 쉽지 않나보다. 지푸라기 고르는 것은 쉽게 했지만 어떻게 고리를 짓는지 몰라 쩔쩔 매다가 관장님의 설명을 다시 듣고서야 완성했다. 그리고선 보고 또 보면서 빙긋 빙긋 웃는다. 처음으로 알게 된 지푸라기 냄새에 킁킁댄다.

우리 아이: "아무것도 아닌 지푸라기가 이렇게 예쁜 달걀 꾸러미가 되는 것이 신기해요! 짚풀 박물관에 가서 더 많은 것들을 만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이거 오래 오래 간직해야지."

어떤 참가자: "어린 시절, 짚으로 덕석과 멍석, 꼴망태, 삼태기 등을 만드는 아버지 모습을 늘 보면서 자랐습니다. 잠시, 농사일 틈틈이 이런 것들을 만들던 아버지 모습과 짚가리 속에서 놀던 때를 떠올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박물관에 꼭 가보아야 겠어요."

우리교육(출판사):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아이들일 수록 한 번 만들어 본 다음에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인병선 선생님의 우리 전통 문화와 짚풀 문화에 대한 애정과 소신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선생님의 소중한 뜻을 가슴에 새기어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어린이들로 자랐으면 해요."

※짚풀생활사 박물관(http://www.zipul.co.kr/)에서 다양한 질풀 문화 체험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관련 자료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짚처럼 풀처럼>(인병선 구술, 정란희 지음/우리교육 2007년 9월 27일/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