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내 남편, 이젠 그를 보내야겠죠-조선일보 07.10.17.

2007.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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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식(離別式)…. 시인의 아내는 ‘이별식’이란 단어를 썼다.

‘껍데기는 가라’의 민족시인 신동엽(1930~1969)의 아내인 인병선(印炳善)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남편의 유품전을 여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남편 떠난 지 38년이 다 되도록 짐처럼 옷처럼 (남편을) 벗어버릴 수가 없었어요. 내 나이 벌써 일흔셋. 이제 신 시인도 떠나보내야죠. 이곳 전시만 끝나면 유품들은 부여 신 시인의 생가에 지어지는 문학관으로 모두 자리를 옮길 겁니다.”

‘신동엽의 노트를 열다’라고 이름 붙인 작은 전시장 구석구석에 아내는 시인의 향취(香臭)를 뿌렸다. 건국대 대학원 시절 학생증, 명성여고 교사증을 비롯해 시인이 즐겨 쓰던 도시락과 군용 숟가락, 겨울 외투, 책갈피에 꽂아뒀던 다섯잎클로버, 애장본 십수 권, 직접 노랫말을 쓴 악보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전시회의 ‘꽃’인 수많은 습작노트와 연애편지, 사진들….
▲ 신동엽 시인이 1964년경 부여의 고향마을에서 찍은 대형사진 앞에 선 아내 인병선씨.
인병선 관장은 “시인의 아버지, 시인 그리고 나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줄 모르는 성격이었다”며 “신문에 단신 한 줄만 나도 잊어버릴까봐 지금까지 두세 장씩 스크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족’을 덧붙였다. “시인에 대한 애절한 마음에 모은 게 아니고, 그냥 버릴 수 없는 ‘습관’ 때문이에요.”(웃음)

인 관장은 신 시인과 함께 산 13년을 “징글징글했다”며 “이를 갈아요, 내가” 하고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가난했죠. 몸 약했죠. 시골집 외아들 장손으로 책임감 컸죠. 부모님 반대 무릅쓰고 결혼했죠. 그런데 ‘민족시인’이라 칭송받던 그 절정에서, 덜컥 간암 선고 받고 20일 만에 갔어요. 어린 애 셋과 나만 달랑 남겨두고. 그후 생활은 아휴….”

시인의 아내는 그렇게 ‘평범한 인간과의 동거와 이별’을 회고하며 아주 평범하게 남편을 원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 버릴 수가 없더라고…. 남편의 시 세계는 귀중했으니까”라고 말했다. 관장의 눈에 언뜻 물빛이 비쳤다.

애틋한 연애 시절 시인은 애인에게 감미로운 편지를 보냈다.

“율동적인 편지에 맘도 몸도 반하였으므로. 언제 그렇게 어여쁜 생각을 하는 아가씨가 나의 옆에 있었던가? 싶게… 요런 깍장이!”

인 관장은 “가녀리고 핸섬한 시인의 모습에 한번 반하고, 감미로운 편지에 두번 반했다”며 웃었다.

전시회는 11월 4일까지 서울 명륜동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열린다. 월요일은 휴무. 문의 02-743-8787~9.